마르타 슈벤데너
뉴욕대학교
뉴욕대학교
유하나의 영상 작업 <Splendour in the Grass>(2020)는 디지털 렌더링된 산의 화창하고도 단조로운 풍경에서 시작된다. 저 멀리 눈 덮인 산들이 보이고, 앞쪽에는 하얀 거품이 솟아나 풍경 전반이 말 그대로 부글거리며 일어난다. 이 장면에서는 선명하고 활기찬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1778 년 작 플루트 협주곡 D 장조 2 번 (K.314)이 재생된다. 이후 영상은 젊은 정신분석학자가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공포의 권력(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1980)에서 따온 듯한 딸기 관련 묘사를 듣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이 설명은 어린 시절의 기억, 우유에 대한 이미지, 화자의 피부에 박힌 작은 딸기 씨앗에 관한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딸기와 우유는 '순수한' 것들이다. 그러나 유하나는 즉각 시선을 돌려 어두운 면을 바라본다. 이 영상 작업은 VR 헤드셋을 소에게 장착하여 목가적 이미지를 연달아 보여준 러시아의 한 낙농장에서의 실험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 실험 결과는 이미지들이 소의 불안감을 줄이고 우유 생산을 증가시킨다는 것이었다.
소는 최근 여러 문학 작품에서 주제로 다뤄졌다. 아리아나 라이네스(Ariana Reines)의 『소(The Cow)』(2006)는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 크리스테바, 그리고 『시체 처리: 종합적 고찰(Carcass Disposal: A Comprehensive Review)』 등의 산업 식품 매뉴얼을 차용하였다. 이로써 작가는 소를 신성한 존재, 반추동물, 대량의 고기 덩어리로 바라보는 불편하고도 불안한 묘사를 만들어냈다. 그런가 하면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의 『소(The Cows)』(2011)는 뉴욕주 북부 작가의 집 길 건너 소들, 그중에서도 도살장에 끌려가기를 거부한 소에 대한 개인적 고찰이다.
유하나와 나는 베를린 빌렘 플루서 아카이브(Vilém Flusser Archive)에서 만났는데, 그 인연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한편 플루서 또한 소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그의 에세이 <소(Cows)>는 1970년대에 쓰여 미국 미술 잡지인 아트포럼(Artforum)과 도서 『내츄럴:마인드(Natural:Mind)』(1979)에 실리는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 및 출판되었다. 이 책은 새, 비, 잔디, 달, 초원, 바람, 안개와 같은 자연의 여러 형태에 대해 숙고한 것으로, 이들이 문화와 기술의 영향을 어떻게 받아왔는지 살핀다. 또한 현대에 그치지 않고 동물의 흔적을 산책로로, 나아가 도로로 사용했던 고대의 어떤 지점에서 자연과 문화가 수렴하는지 고찰한다.
플루서의 <소>는 다소 풍자적인 방식으로 소가 풀을 우유로 변환시키는 데 효과적인 자가 번식 생물학적 기계임을 짚는다. 또한, 그들의 몸은 고기나 가죽으로 소비될 수 있는 하드웨어이자 진보에 관한 서구적 개념의 원형이라고 말한다.1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과 이들의 우아한 형태를 비교하며, 플루서는 소가 "첨단 기술에 의해 디자인되고 생태학에 영향 받을 미래
기계의 원형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사실상 현재로서 우리는 소야말로 미래를 지향하는 기술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2
유하나에게 있어 소는 ‘원형(prototype)’이라기보다, 플루서가 1980 년대에 기술 이미지(Technical Images) 이론에서 발전시킨 용어 ‘장치(apparatus)’다. 소들은 장치와 ‘연결되어’ 있기도 한데, 여기에서 장치란 VR 헤드셋일 수도, <Splendour in the Grass>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착유기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소들은 인간의 삶을 대리하여 드러내는 대역이자 우화가 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영상 속 젊은 정신분석학자가 소 가면을 쓴 환자에게 말한다. 우리의 생각도, 감정도, 몸짓도 그러하다.
플루서는 산업 공정이 어떻게 자연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자연들'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밝혔다. 한편 그의 책은 이탈리아 메라노의 녹음이 우거진 알프스 산기슭에서 쓰였는데, 이곳은 플루서의 문학적 선조인 카프카(Franz Kafka)가 한때 결핵 치료를 위해 공연히 여행했던 온천 마을이었다. 10 대 시절 프라하에서 접한 유럽 관념론부터 성인 망명자이자 브라질의 홀로코스트 난민으로서 플루서가 발견한 열대 식물에 대한 억압적 접근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자연에 관한 여러 철학적 접근을 연결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플루서는 농담조로 『내츄럴:마인드』를 브라질인을 위한 '관광 가이드'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관광'이 '이론'이라는 용어의 새로운 동의어로 이해되는 한"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3
그러나 유하나의 영상 작업에서 알 수 있듯이 기후 변화, 식량 체계, 전염병, 갈등, 이주, 기술 문제가 우리의 상호연결성을 강화함에 따라 인간 모두 점차 동일한 자연/문화 시스템에 종속되고 있다. 작가의 영상 속 의인화된 풀과 같이, 우리는 자연(소)부터 문화(잔디 깎기)까지 여러 포식자에게 포위된 집단이다. 더욱이, 우리가 각기 다른 전통으로부터 왔을지라도 모두의 미래 생존은 후기 역사주의적 사고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육 후이(Yuk Hui)가 ‘코스모테크닉스(cosmotechnics)’라고 칭한, 이데올로기적 제국주의나 데카르트 사상을 뛰어 넘는 전지구적 기후 및 기술 이론 개발이 있겠다.4
플루서는 예술을 새로운 미래 상상을 위한 장소 중 하나로 바라보았다. <Splendour in the Grass>에서 유하나는 우화와 동화를 참조하여 이러한 문제를 철학적이고도 장난스럽게 다룬다. 일반적으로 이야기들이 그러하듯 그의 영상에는 주체가 있다. 그러나 작가가 지적한 것과 같이, 기술을 인터페이스나 제어 장치로 사용하는 인간과 소 사이의 주체-객체 관계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식에도 반영된다. 불안을 잠재우고 우유 생산을 부추길 수 있도록 러시아 소에게 제시되었던 이미지는 대중 매체가 소비자로 하여금 점차 더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게 하여 그들을 노동자로 뒤바꾼다는 플루서의 '기술적 형상의 우주(Universe of Technical Images)' 개념과 유사하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모차르트 곡의 활기찬 플루트 소리와 함께 영상이 끝나기 전, 젊은 정신분석학자가 재차 말한다. 이로부터 오는 신랄함은 다층적이다. 모차르트는 플루서가 가장 좋아했던 작곡가 중 하나인데다가, 그는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모차르트는 플루트를 싫어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자주 인용되는 1778 년 9 월 편지에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썼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악기를 위해 작곡을 해야 할 때마다 제가 무력해진다는 걸 아시잖아요.") 그는 본래 오보에를 위해 작곡한 협주곡을 플루트 협주곡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그가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하나의 영상 작업에서 소 가면을 쓴 캐릭터는 "전 우유가 싫어요"라고 정신분석학자에게 털어놓는다. 게다가 그는 무의식 자체의 개념, 즉 인간을 착취자이자 피착취자로 만드는 컨셉에 사로잡혀 있다. 억압과 감금의 장소인 <Splendour in the Grass> 속 알레고리적 '방'에서 우린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아마 소나 모차르트에 대한 동정과 연민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plendour in the Grass>(2020)
마르타 슈벤데너(Martha Schwendener) 박사는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미술 평론가이자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방문 교수이다. 그의 비평과 에세이는 아트포럼(Artforum), 애프터이미지(Afterimage), 북포럼(Bookforum), 옥토버(October),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뉴요커(The New Yorker),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 브루클린 레일(The Brooklyn Rail), 아트 페이퍼스(Art Papers), 뉴 아트 이그재미너(New Art Examiner), 페이퍼 모뉴먼트(Paper Monument) 등에 실린 바 있다. 현재 슈벤데너는 빌렘 플루서의 예술 철학에 관련된 원고를 작업 중이다.
1 Vilém Flusser, “Cows,” Artforum (September 2013): pp. 374-377; 이 에세이는 다음 학술지에도 게재된 바 있다. Philosophy of Photography 2, no. 2 (July 2012): pp. 244-247.
2 Flusser, Natural:Mind, p. 44. 그러나 번역가인 로드리고 말테즈 노바에스는 "이 에세이는 1970 년대 후반에 쓰였으므로, 전 세계 소떼가 배출하는 메탄 가스의 오염 관련 데이터는 활용이 불가능했거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3 Flusser, Natural:Mind, p. 143.
4 Yuk Hui,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in China: An Essay in Cosmotechnics (Oxford: Urbanomic, 2018), Art and Cosmotechnic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e-flux, 2021).